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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만 없어지면 세상은 선해 질까요? -한동수 목사님 글

글쓴이 : 한미연합감… 날짜 : 2015-01-11 (일) 03:01 조회 : 943

 성경에는 수많은 예수님의 영적 가르침과 비밀이 담겨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일 것이다. 한 율법교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내 이웃은 누구냐"고 묻는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 물음에 대답하신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누가복음 10:30-35)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가 대답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길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천국을 이루는 삶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으로 가득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이웃사랑의 길은 강도 만난 자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신다. 그것이 진정한 이웃이고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강도를 만나지 않게, 세상에 강도가 없게 세상을 개혁하고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강도가 없다면 강도 만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요, 그러면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자기의 위치와 명예 때문에 이웃을 피하는 사람들의 죄의식과 수치심도 없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인간의 내적 본질보다는 세상과 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통해 행복한 사회를 이루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회제도를 통해, 법 체계를 통해,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사시던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은 황폐한 사회였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던 로마의 속국이었다. 하지만 로마의 친정 정책으로 강압적인 지배가 아닌 이스라엘의 종교법과 사회제도를 인정해 주는 문화 정책을 썼다. 하지만 많은 세금과 경제적 침체는 극복하기 힘든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세리들의 횡포가 심했고, 지중해 연안의 농업을 기반으로한 이스라엘의 경제는 가난한 소작농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힘겨움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많은 이들이 들로, 산의 굴로 들어가 강도의 행각을 벌이는 일이 빈번했다. 예수님도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으니 비유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드신 것이다.


   때문에 사회제도와 구조를 바꾸면 강도가 없어지고 강도가 없어지면 피해당한 사람도 없어지기에, 돕는 이웃이 없어도 세상은 아름다와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이다. 하지만 강도가 없어진다고, 경제가 나아져  먹고 살기가 풍성하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회란 없다.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도 말 뜻 그대로 이 땅에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상적 사회사상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노예제도를 타파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뉘고, 수많은 대가를 치뤄가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사라졌는가? 사회가 아름답게 변했는가?    물론 세상이 점점 살기 좋게 변한 건 사실이다. 더 잘 먹고 잘 산다. 그렇다고 행복해졌는가? 행복지수가 잘 먹고 잘 살면 높아지는가? 그리고 남에게 피해당하는 사람이 사라졌는가? 더 많은 가슴의 상처와 인간에 대한 불신이 넘쳐나지 않는가?


   우리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리고 모든 가르치심은 우리의 내적 본질과 영혼에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어떤 사회건 강도 만난 사람이 계속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누르고,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해하고, 남을 질투하는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고 그 형상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주님의 명령을 지킬 것을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세상의 변화는 바로 우리의 내적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여전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의 모습, 레위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때론 강도가 되기도 한다. 그 내면의 모습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리 사회구조가 변하고 법 체계가 변해도 강도는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고 세상은 피해주는 사람과 피해 당하는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다.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심령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이 가난해지고, 따뜻해지고, 새로워지며, 선해 지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다. 강도를 탓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되돌리자.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축복이다. 오늘 주님이 나와 당신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초대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