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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

글쓴이 : 한미연합감… 날짜 : 2018-03-03 (토) 06:09 조회 : 132

       목사님들 속회가 목요일에 있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이 사회 정의에 대해 입장을 나누기를 원했다. 현대 사회에 불거진 많은 사회 문제들의 근저에 놓여 있는 성서적, 신학적 논거들이 있다. 그런 구체적인 현황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모임에서는"은혜"라는 관점에서 인도자가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접근했다. 사회 정의의 문제는 불평등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불평등은 차별과 소외를 만든다. 예전 보다는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인종차별의 문제, 아동학대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경제적 부와 빈곤 사이의 불균형 문제, 한국에서 불같이 번지고 있는'Me Too' 운동. 미국의 총기에 대한 문제 등등 많은 현안들이 사회 정의의 문제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정의(Justice)에 대한 문제는 철학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구체화 된 것은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롤스는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의론을 내세운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행복의 가치로 삼는 사상이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항상 따라오는 문제가 있다.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인권과 존엄성이 훼손되는 한 그 사회는 참 다운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는 목적적 처벌이다. 목적적 처벌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것을 묵인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에 금을 가게 만들고, 우리 말로 표현하면 한을 만들어 내는 구조다.

 

       목적적 처벌의 예는 이렇다. 한 마을에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 한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오비이락이라고 할까 그 무렵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무리 조사해도 범인의 단초를 찾을 수 없었다. 마을의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이 살인 사건으로 마을 전체가 동요합니다. 모두가 서로를 의심합니다. 우리 마을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두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범인을 지목합시다. 마침 우리 마을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연고도 없습니다. 그를 살인자로 만들어 교수형 시키면 마을 전체가 다시 평안과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이 목적적 처벌은 마을 사람들의 전체를 평안하고 행복한 상태로 되돌릴 수는 있으나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도덕적 결함과 부정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롤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부도덕한 일과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은 정의 사회가 아님을 비판하면서 정의론을 내세운다. 물론 그 정의론은 현대에 와서 더욱 복잡해지고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소수가 희생되는 것은 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그렇고 신앙적으로도 그렇다. 그렇다면 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데 우리 신앙인들이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마땅한가? 물론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일에 함께 분노하고 하나님이 만드시기 원하는 사랑과 평화와 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천국 백성들은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제도를 고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는 좀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사람이 이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다. 사실 강도를 만난 이유를 분석해 보면 그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로마의 식민지에 세리에게 당하는 중과세, 그리고 토지를 모두 분봉왕에게 빼앗긴 소작농, 가난과 싸워야 했고 독립과 싸워야 했던 사회의 부조리들이 이들을 괴롭혔다. 결국 강도가 된 이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혔고, 바로 강도 만난 사마리아인도 그 중 하나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강도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불평등한 경제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토지 제도가 변화되어야 하고 로마의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결국 이스라엘은 독립을 해야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회 구조에 먼저 관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강도 만난 사람을 잘 돌보는 일이다. 선을 베푸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예수님은 언제나 겉으로 나타난 문제보다 우리의 마음에 관심하신다. 사랑의 마음에 관심하신다. 사회 문제에 대한 정책도 중요하고 사회 구조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정말 평화를 원하고 평등을 원하고 차별을 거부하며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의 출발이며 십자가의 의미라 할 수 있다